추석과 일주일 간격으로 시아버지의 기일이다. 올해는 코로나 방역에 협조하는 뜻에서 추석 차례에는 모이지 않고 시아버지 기일에 자녀들만 모이는 것으로 하여 준비하기로 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 아버지 기일은 8월 22일. 우리 엄마 빼고 기억들은 해 주려는지 모르지만 내 생일은 음력 9월 1일. 나는 생일을 약력으로 지낸다. 예상대로 2년전엔 내 생일에 아버지 제사상을 차리고 있었고 올해는 추석 바로 전날이니 하마터면 생일에 차례상을 차리고 있을 뻔했다. 이덕무가 쓴 <사소절>에 나오듯이 제사를 준비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차리느냐보다 돌아가신 분을 그리는 슬픈 마음이다. 시아버지는 음식을 그리 잘 드시는 분이 아니셨다. 음식을 차리는 사람 마음은 그렇다.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 그러니 아무리 노력해도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내 마음은 편안하지가 않았다. 시댁에서 같이 사는 맏며느리인 나는 폐암으로 투병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시댁이 다른 집들과 다른 점은 투닥거리시는 듯 보였지만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한마디로 며느리의 투정하는 입을 막는 시어머니와 욕심없는 자식들의 아버지에 대한 소박한 사랑이 있달까. 효도를 며느리에게 대신 시키지 않았다.
별것 아닌 이 장미는 식구들이 안심하고 모두들 잠이 들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그림이다. 성당에서 꽃꽂이한 후 남은 장미들이었는데 한 송이 한 송이 담았다가 화폭에 하나로 합쳤다. 그나마 화사한 장미를 그릴 때는 친정 엄마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더디기만 한 인내의 시간이 화사한 흔적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애썼다고 흔쾌히 선물로 받아 주셨지. 이 그림 사진을 보고 울컥 동감해준 선미의 마음도 기억한다. 먹을 것과 두둑한 용돈과 친구들로 가득한 생일이 있던 젊은 날은 확실히 가버렸다. 그 자리에 만감이 들어와 앉은 추석과 제사. 아이구 내 팔자야, 한 마디 해주고 방탄소년단의 명곡 <봄날>을 열심히 들으면서 마른 꽃 털어내듯 툴툴 털고 일어난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 모든 것은 흐르니, 나 또한 그러하니.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가루 속에, 이용악 (0) | 2020.11.09 |
---|---|
하면 안 된다, 자크 프레베르 지음, 오생근 옮김 (0) | 2020.11.04 |
인간이 우주에 홀로 존재한다면 그에게는 어떤 권리도 없겠지만 그래도 의무는 있을 것이다-시몬 베유 (0) | 2020.11.02 |
'며느리 사표'란 말에 쫄아서 (0) | 2020.09.07 |
신박한 정리는 아니라도 (0) | 2020.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