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당신을 구할 철학 수업, 박찬국 지음, 21세기 북스, 2021.

빨간차무다리아줌 2023. 9. 22. 20:43

멍한 하루였다. 사거리에 서서 어느 길로 가야하나, 표지판이 될 단서 하나라도 보이길 바라며 두리번 거리고 있달까. 그늘 하나 없이 햇볕은 내리쬐고 이마에선 식은 땀이 흐르는데 발은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냥 저냥 책을 읽다가 '선'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에 옮겨본다.

227-228 은총처럼 주어지는 무의 상태에 있는 사람만이 온전히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교나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할 수 있고 보살의 자비행을 행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욕망에 쫓기면서 내적인 결핍감에 시달리는 사람은 타인들을 결코 사랑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부정이야말로 절대 선, 최고선이라고 본다.

일상적인 세계에서 '선gut'은 '욕망에 부응하는' 것이고, '나쁜 것'은 욕망에 부응하지 않는 모든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을 선하다고 말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쁘다고 말한다. 이렇게 일상적 세계에서의 선은 이기적인 의지에 대한 관계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에 상대적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는 살려는 의지의 완전한 부정만이 절대 선, 최고선이라 불릴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쇼펜하우어는 살려는 의지의 부정, 즉 절대 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본다. 이는 살려는 의지가 구체화되어 있는 신체가 살아 있는 한 살려는 의지도 가능성으로 여전히 존재하며, 동기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불타오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개별화의 원리를 미망으로 파악하면서 살려는 의지까지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살려는 의지를 포기하려면, 보통은 그 이전에 어떤 커다란 고뇌와 불행에 의해 살려는 의지가 허망하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자각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