絶學無憂(절학무우)
영어세대를 위한 노자도덕경, 선학사, 2017.
135-145에서.
소위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을 버리면, 근심할 일이 사라진다 (絶學無憂) .
"예"하는 대답(존대하는 대답)과 "응"하는 대답(격식을 차리지 아니한 대답)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되는가?
선과 악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된단 말인가?
남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나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광대하다. 참으로 끝이 없구나.
세상 사람들은 희희낙락하는데, 그것은 마치 큰 잔치를 향유하는 것 같기도 하고, 봄에 누각에 올라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나만 홀로 활동하지 않거니와 어떤 일을 시작할 생각조차 없으니, 나는 아직 웃음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구나. 그리고 너무 힘이 빠진 상태에 있어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 같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여유를 가지고 있는데, 나만 홀로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고, 나의 마음이 우매한 사람의 마음과 같다(我憂人之心也哉). 혼란스럽다.
세상 사람들은 사리에 밝은데, 나만 홀로 어두운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살피는데, 나만 홀로 세상사에 무지한 것 같다. 조용히 머물러 있다. 잠잠한 바다와 같다. 거센 바람의 모습이다. 마치 머물 곳이 없는 것처럼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구나.
사람들은 모두 쓰이는 일이 있지만, 나는 유독 재주가 없고 비천한 것 같다. 나만이 유독 다른 사람과 달라서 길러주는 어머니(食母)를 귀하게 여긴다.
식모(食母) : 유모. 밥을 주며 길러주는 어머니. 왕필은 "식모는 삶의 근본이 된다. 사람들이 모두 백성을 살리는 근본을 저버리고 말단적인 장식의 화려함을 귀하게 여기므로, 나 혼자라도 남들과 다르게 가려고 한다고 말한다."라는 의견이고, 범응원은 "식(食)은 사람을 기르는 물건으로,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모(母)는 도(道)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결국 "백성을 살리는 근본"은 "길러주는 어머니(食母)이고, 길러주는 어머니는 "대자연(大自然,nature)", "우주(宇宙)", 혹은 "도(道)"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 대자연은 만물을 품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길러주기 때문이다. 위정자도 대자연이 만물을 다스리는 것을 본받아 만백성을 포용하고 그들이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선정을 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결국 죽을 때까지 또 죽어서 남을 내 역할은 엄마여야 하는 게 맞는가. 모두 '식모' 되기. 그게 대자연, 우주, 도. 그 마음은 우매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과 같다고. 내 맘대로 노자 해석하는 오후. 배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