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나브로 선생님과 함께 13세기 프랑스 접이식 제본 수업
5월 25일 (토) - 26일(일) 드디어 고대하던 프레데릭 나브로 선생님과 마리안 피터(마블링) 선생님을 만나 13세기부터 15세기경까지 만들어 사용되던 "박쥐 책(Bat book)"이란 것을 만들었다. 책보수 수업이라고만 전해들어서 뭘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미리 자료를 보내주었지만 이걸로 무엇을 하게되는 건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프레데릭 나브로 선생님이 보내주신 자료 번역 ----
보존학예사, 자료 — 박쥐 책(배트 북)
수사본 보존 책임을 맡고 있는 알렉상드르 튀르는 최근 박쥐 책에 대하여 온라인 컨퍼런스를 열었다. 박쥐 책이란 여러 겹 접은 양피지로 만들어진 책으로, 놀라운 기법을 보여준다. 크로니크지에 의하면, 그가 소개하고 있는 이 중세 시대의 책은 현재 세상에 몇 권 남아있지 않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은 4만 권의 수사본 소장하고 있다. 그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코덱스로 중세 초기부터 가장 널리 퍼져있던 책의 형태이다. 코덱스는 여러 장의 양피지 또는 둘로 접은 종이를 공책처럼 모아 중앙에 접힌 선을 따라 꿰매 만드는 것이다. 또, 고대 시대 보편적으로 사용된 두루마리 형태의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와 대단히 희귀한(세계적으로 단지 60권 정도 존재한다) Bat book이라고 불리는 형태의 수사본 세 권이 있다. Bat book, 말 그대로 ‘박쥐 책’이다.
이렇게 이름 지어진 건 그것의 흥미로운 외양 때문이다. 명명자인 네덜란드 역사가 Johann Gumbert는 이렇게 설명했다. “거꾸로 메달려 날개를 완전히 접은 채 휴식을 취하다가 움직이는 순간 고개를 들고 날개를 활짝 펴지 않는가” 프랑스 중세 시대에 사람들은 나병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거리두기 하도록 표시하던 나무로 만들어진 도구와 닮았다고 하여 cliquette de ladre 책이라고 불렀다. 박쥐 책의 양피지는 접어서 그 선을 따라 꿰매지 않고 끝에 작게 덧덴 옹글레가 특징이다. 여러번 접어서 작은 책 모양을 만드는데 접힌 낱장들은 펼치기 쉬워 하나의 긴 텍스트나 이미지 또는 여러 페이지로 나누기 힘든 하나의 그림 전체를 한 번에 볼 수 있다.
(알렉상드르 튀르, 수사본 보존 책임이 박쥐책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Béatrice Lucchesse/Bnf:프랑스국립도서관)
이렇게 접어서 책을 만드는 방식은 13세기 등장한 듯 보인다. 여행을 떠나거나 할 때 가볍게 지니고 다닐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을 휴대하기 위해 소형화하는 다른 방법들 - 양피지는 아주 얇게 글자크기를 작게 - 과 빠르게 어깨를 나란히 하며 14세기와 15세기까지 지속된다. 이 특이한 형태로 보급되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달력이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로마 카이사르 이래로 사용되어 온 율리아누스력의 계산 착오에 직면해 있었다. 한 해 길이가 달력과 대조해 짧아서 계절과 괴리가 있었지만 음력, 유명한 황금 숫자(황금비)와 일치하는 시스템으로 300년마다 하루를 더한다. 그 결과 하늘에 보이는 보름달과 달력상 보름달 사이에 눈에 보이는 차이가 생겼다. 이는 민정(국민, 시민, 백성의 사정과 생활 행정)에 가볍지만은 않은 문제였다. 종교인들 같은 경우 부활절이 매우 중요했는데, 이 부활절은 봄철 만월 후 첫 일요일이었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16세기가 되어서야 사용되는 그레고리안 력 이전에 취할 수 있던 대응 방안은 달력에 천문학을 반영한 상현 하현 만월 날짜와 시간, 76년 주기 주요 교회 전례 날짜와 주일을 넣은 달력을 보급하는 것이었다. 이런 달력들은 고전 형태의 책으로도 보급되었지만 박쥐 책 형태로 가지고 다니기가 더 편리하고 이 박쥐 책에는 커다란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었다. 박쥐 책은 이렇게 달 모양에 크게 의존하는 순례객들이나 천문학자들, 의사들에게 이용되다가 16세기 인쇄와 경쟁하게 되면서 사라졌다.
https://www.bnf.fr/fr/mediatheque/trois-bat-books-du-moyen-age
Trois « bat books » du Moyen Âge
BnF - Site institutionnel
www.bnf.fr
제 이름은 알렉상드르 튀르, 프랑스 국립 도서관(BNF) 수사본 보존 학예사입니다. 특히 중세 시대 과학 원고를 다룹니다. 오늘 여러분께 보여드리고자 하는 수사본 배트 북(박쥐 책)이라고 부르는 대단히 특별한 형태를 지닌 책입니다.저희 도서관은 전 세계에 등재 되어있는 60 여권 가운데 3개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곧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텐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 latin 7478 (라틴 7478)
- nouvelle acquisition latine 375 (신착 라틴 375)
- nouvelles acquisitions latine 482 (신착 라틴 375)
여러분들은 이 검색어로 BNF 수사본 목록 또는 디지털 도서관 Gallica에서 찾아보실 수 있는데 특히 디지털 도서관 Gallica에는 수사본 전체가 디지털화되어 보존될 예정이어서 우리도 이 원고에 곧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 세 가지 수사본을 살펴보기 전에 중세 시대 다른 책들은 만드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책의 형태는 코덱스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우선 홀수 페이지를 읽고 넘겨서 뒷면의 짝수 페이지를 읽도록 텍스트를 써넣어 묶은 책을 말합니다. 이런 형태는 앞선 고대 시대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두루마리를 대체하면서 중세 초기부터 주류로 자리 잡습니다. 양피지나 종이로 책을 만드는 장인의 입장에서 보면 두루마리를 만들 때만큼의 종이를 하나씩 차례로 바느질을 해 꿰매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코덱스를 만드는 건 조금 더 복잡합니다. 1장을 접어 여러 대수를 만들어야 하죠. 양피지의 경우, 둘로 접어 이를 2장씩 3장씩 4장씩 때때로 5장씩 합쳐서 한 대수를 만들고 이 접은 곳을 따라 바느질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 대수를 만들어 묶어 함께 꿰매 책을 만들면 수백 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 될 수 있습니다.
박쥐 책은 아마도 여행 책에 대한 필요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13세기에 매우 얇은 양피지에 아주 작은 크기로 글자를 써넣어 코덱스를 축소하는 기술과 경쟁하며 등장했지요. 이 “미니어처 코덱스”를 만드는 기술은 그후 중세 말기까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성경책이나 기도서를 만드는데 이용되었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는 무엇보다 달력을 만드는 데 유용했습니다. 달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온갖 종류의 큰 그림이 들어갈 수 있는 꽤 넓은 표면이 필요합니다. 즉 한 텍스트를 여러 쪽에 걸쳐 펼칠 수 있어야 하고 반대로 수백 쪽까진 필요가 없었던 거죠. 한 달에 한 쪽, 분석표 같은 텍스트를 넣고 싶으면 가끔 몇 쪽을 보조로 넣어주면 충분했죠. 이 때문에 박쥐 책을 생각해 냈고 책을 펼칠 수 있게 만들었던 겁니다.
박쥐 책은 코덱스에서처럼 여러 대수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양피지를 사용합니다. 박쥐 책을 만들려니 종이가 너무 약합니다. 그런데 종이를 옹글레로 해서 모든 쪽을 붙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표면에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넣고 옹글레가 풀리면서 접고 펼쳐지도록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접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접는 방식에 따라서 어디에서 기원한 박쥐 책인지 알 수 있기도 합니다. 때론 알 수 없기도 하지만요. 어떤 것은 때로 더 횡단면으로 접힙니다. 저는 잘 접지 못한 것 같군요. 장인들이 보시면 절 그다지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접으면 여러 쪽이 묶이겠지요. 그러면 여기에 옹글레를 꿰매서 강화합니다. 이렇게 15쪽에서 20쪽이 합쳐집니다. 코덱스와 같은 제본 방식이 아니지만 옹글레를 만들어 페이지를 보강하고 훨씬 가벼운 가죽을 대주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장들과 마지막 장들은 여전히 약합니다.
책을 열어보려면 이런 식으로 열어야 할 겁니다. 되긴 하는데 체계적이진 않습니다.반이 접혀 있는 중간 쪽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작은 텍스트나 그림을 삽입했습니다. 그 결과 작은 크기에 가볍고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책이 됩니다. 고리를 걸어 가지고 다니거나 허리에 채울 수 있어요.. 만드는 방식이 흔적으로 남아 있어서 그 그림을 보고 싶으면 책을 펼치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주름은 양피지를 약하게 만듭니다.
왜 박쥐 책에 관해 말씀드리냐고요? 아까부터 박쥐 책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지만 이것은 짐작하시듯이 그 시대 사용하던 이름이 아닙니다. 네덜란드 Layden 대학에 있는 코디콜리오지 학, 책의 개념을 연구하는 학문 교수였고 몇년 전인 2016년에 가장 완전한 목록을 만들어 출판했던 Johan Gumbert가 만든 신조어입니다. 그분 덕에 만들어진 목록을 여러분께 보여드릴게요.
Johan Gumbert가 보기에 이 책들은 날개를 접고 거꾸로 매달려 쉬다가 활동할 때 날개를 펴는 박쥐를 닯았습니다. 이 신조어의 이점은 이 말이 책, 박쥐 책을 그 내용이 아닌 만드는 방법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접이식 연감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꽤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모든 연감이 박쥐책은 아니고요. 마찬가지로 모든 접이식 책, 접을 수 있는 모든 책이 반드시 박쥐책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반대로 모든 박쥐책이 달력인 것도 또는 사진 연감인 것도 아닙니다.
중세시대에는 crécelle de pestiférés 또는 cliquette de ladre 모양의 책 같은 보다 시적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애들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아마도 시끄러운 crécelle 이나 cliquette 같은 장난감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셨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중세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장난감이 아니라 사회적 거리 두기 위한 도구였는데요, 페스트 환자나 문둥병자들에게 지니고 다니라고 했어요. 나병환자나 다른 전염성이 의심되어 거리를 두도록 하는 환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소리를 내서 이를 표시하고 거리를 두게 했죠. 여기 그림을 보시면 클리켓을 지니고 있는 나병환자를 보실 수 있죠. 흔들면 소리를 내는 여러 조각의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클리켓이 보이시지요. 여기 보시면 그것이 우리 박쥐 책과 어째서 닮았는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1)
다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세 개의 달력으로 돌아와 자세히 말씀 드리지요. 신착이라고 앞서 보여드린 라틴 375가 여기 보시는 (2)번인데요, 아마도 원래 상태에 가장 가까운 것일 것 같습니다. 먼저 최상의 상태는 아님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박쥐 책은 부서지기가 쉬운 데다가 묶여 있는 양피지는 접혀 있고 커버는 중세에서 만들어진 그대로 제대로된 제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세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코덱스 양쪽을 나무 판자나 나무 편으로 제책했습니다. 여행하면서 가지고 다니기는 너무 무거웠겠지요! 첫 번째 쪽의 뒷면(3)을 보여드리면 뒷면이 같은 원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커버가 있어요. 뒷면을 보면, 섹션이 하나예요. 그러면 수사본을 펼쳐 볼 수 있으면 하실 겁니다.(4) 나머지는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떨어지거나 없어졌음에 틀림없습니다.
다음 쪽으로 넘어가면(1), 두 번째 장이 나오는데 2월에 해당하죠. 1월에 해당하는 많은 부분이 빠져 있어요. 이렇게 펼치면 6개 섹션으로 나뉘어 있는 전체 달력이 나올 거예요. 수사본 맨 마지막도 같은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마지막 장에 6개 섹션 중 3개가 남아 있어요.
세개의 수사본 중에 두번째는 신착본인 라틴482인데요. 여기 있습니다. 새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옹글레 위에 꿰맨 것이 잘 보이지요. 꿰맨 것이 코덱스처럼 안쪽에 있지 않고 각 장들을 함께 묶고 있습니다.
옆으로 보이는 단면을 보시면 (3), 각 장을 어떻게 묶었는지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수사본이 새것 같아 보인다면, 진짜라 하기엔 너무 아름답지요, 19세기에 다시 꿰매고 표지를 다시 만들었지만, 우리가 판단하기에 원본과 동일한 방식으로 제책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세 번째 박쥐 책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라틴7478은 시기적으로 가장 최근의 것입니다. 나머지 두권의 경우 14세기 것인데 반해 15세기 것이기 때문입니다. 1711년 루이 14세 왕에게 헌정되었는데 저희가 보관하고 있는 목록에 따르면 그 책은 묶여있지 않았다고 해요. 코덱스 책을 만드는 제책술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지 또는 그저 표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말하기 어렵습니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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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아닌 양피지와 가죽으로 책을 만들던 시기 작은 책을 만들어 지니고 다닐 목적으로 만든 오래된 책 형태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8세기에 만들어졌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책인 <직지>도 14세기 만들어졌다니까, 종이를 사용하던 우리로선 조금 의아한 면이 있었다.
토,일 이틀간의 수업은 그야말로 대 반전. 큰 깨달음과 기쁨을 주었다. 물론 가죽, 양피지(실대신 사용)라는 소재를 만지고 다루는 일이 처음이었고 양피지를 대신해 만져본 '코끼리 종이'도 생소해 따라가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보통 책을 보수한다 하면 낡고 해진 책을 다시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오히려 반대로 현재의 새 것을 파괴하고 오염시켜서 시간을 거슬러 원본에 가까이 가는 것이라는 발상이 너무 즐겁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