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십니까?
50+서부캠퍼스 작은도서관활동가 과정을 다닌다. 활동을 해야 하니 좀 외향적이어야 할텐데 나는 좀 소심하고 지극히 내향적이다.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하루의 수업 시간. 그 마지막 한 파트는 말하자면 '자기자신 알기' 프로젝트, '대자(대놓고 자랑하기)', '위로의 경험 나누기',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등등의 스피치 시간이다. 지난 번엔 무턱대고 카톡으로 카메라에 있는 자신의 사진을 올리라고 하길래 소심한 반항으로 이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냈다.
나에게 자랑할 거리가 뭐가 있을까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더랬다. 이런 반항심을 안다면 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로 다른 사람들의 발표를 지켜보고 있을 때 이 사진(여기엔 그 사진을 그려서 올린다)이 하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황당하고 난감하지만 무엇을 가리고 가공하고 그럴 시간도 없고 투덜거리며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안 감아서 나가긴 나가야겠기에 5천원씩이나 주고 산 핀으로 간신히 머리를 올렸다. 오십견이 와서 힘들었다. 왼팔이 아파서 오른 손으로 찍은 사진이다. 별 내용 없이 두서 없는 발표였다. 서하경(재미사마)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이렇게 받았다. '오십 넘어 오십견은 왔지만 머리 숱은 아직 많다고 '대자'를 한 셈'이라고. 그 말에 다른 수강생 선생님들이 맞장구를 치신다. '머리숱 없으면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라고'.
그런 생각은 정말 1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나는 아직도 나를 잘 알지 못한다. 겸손이고 뭐고 생각할 여유 없는 그런 평범한 사람일 뿐이고 그런 생각을 여과없이 이야기할 뿐인데 사람들은 거기서 '자랑'을 '장점'을 찾아낸다. 반성했다. 나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비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찾는 사람이 되어야지.
반성하는 김에 한 가지 더. 이은경은 <오늘의 글쓰기>에서 말한다.
'정말 잘 된 글은 아이도 이해할 만큼 쉽고 친절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게 더 어렵습니다. 어렵게 쓰는 게 쉽고, 쉽게 쓰는 게 어렵습니다. 글을 읽는 사람이 글 속에 조금 더 오래 머물게 하고 싶다면 쉽게 써야 해요. 술술 읽히면 계속 읽게 되고, 계속 읽다 보면 재미를 느끼다 결국 이 글을 쓴 사람이 궁금해지고 애정을 갖게 됩니다. 누가 썼을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궁금해하게 만드는 글은 쉬운 글입니다.'(182쪽)
어릴 때부터 거듭거듭 듣던 말인데 여전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 블로그도 여전히 배움이 모자라 헤메고 있을 뿐인데 처음 블로그를 방문한 동생이 한 말은 '언니는 굉장히 지적인 사람이었네'였다. 앎을 드러내보이려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 내 안에 쓰레기처럼 쌓여 있는 것들을 정리해 보자고 하는 시도였을 뿐인데, 말은 꼬이고 글은 누덕누덕이다.
50+ 작은도서관활동가 과정을 듣고 있을 뿐인데 이래저래 나를 돌아보게 되면서 또 한가지 나름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반성하면 마음 아픈데서 빠져 나오기가 힘들었다. 지금은 달리 생각하게 된다. 아직 좀 더 나아질 기회가 더 있다고 열심히 쓰다보면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고 다시 기대해 본다. 기대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