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속에, 김사량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라는 오디오북을 듣다 알게된 작품이다. 지은이도 처음 들었고, 듣다가 결말이 왠지 생뚱맞지만 수긍이 가는 작품이어서 기록을 남겨 본다. 김사량이란 작가가 누군지 검색해 보았다. 김사량은 평양 출생의 소설가, 희곡 작가로 일재 말기 식미지 조선의 소설가, 희곡작가. 조선어와 일본어 모두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1950년 37의 나이로 죽었다고.굉장히 잘 살았던 집이었다는데 양친의 성명도 알려지지 않았다. 모친은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만주에 지점을 가진 백화점을 경영하는 기독교인이자 사업가였다고 알려져 있다. 1940년 재일 조선인을 다룬 단편소설 <빛 속에>로 조선인 최초로 아쿠다가와 상 후보에 선정되었다. (위키백과)
화자의 상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 교실 안에서 어느새 미나미 선생으로 통하고 있었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나의 성은 남가인데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하여 일본식으로 불리고 있었다. 나의 동료들이 먼저 그런 식으로 불렀다. 처음에 나는 그렇게 부르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후에 나는 이런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놀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편이 나은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위선을 보일 까닭도 없고 비굴해질 이유도 없다고 몇 번이나 자신을 납득시켰다 그리고 두말할 것 없이 이 아동부에 조선아이가 있다면 나는 억지로라도 남가라는 성으로 부르도록 요구했을 것이라고 스스로 변명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조선아이에게도 일본아이에게도 감정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어느 날 밤 아이들과 함께 떠들고 있는데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나의 학생이 들어왔다. 자동차 조수를 하면서 밤마다 영어와 수학을 배우러 오는 이아무개라는 건장한 젊은이었다. 그는 문을 닫자 싸움을 걸듯이 나의 앞을 막아섰다.
"선생님." 그것은 조선말이었다.
나는 흠칫하였다.
화자가 이야기 하는 야마다 하루오의 소개로 소설이 시작된다.
내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야마다 하루오는 실로 이상한 아이였다. 그는 다른 아이들 속에 휩쓸리지 못하고 언제나 그 주위에서 소심하게 어물거리고 있었다. 노상 얻어맞기도 하고 수모를 당했으나 저도 처녀 아이들이나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을 못살게 굴었다. 그리고 누가 자빠지기라도 하면 기다리고 있은 듯이 야야하고 떠들어댔다. 그는 사랑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또 사랑받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보기에 머리숱이 적은 편이고 키가 컸으며 눈은 약간 흰자위가 많아서 좀 기분이 나쁘다. 그는 이 지역에 사는 그 어느 아이보다 옷이 어지러웠으며 벌써 가을이 깊었는데도 아직 해어진 회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눈은 한층 더 음울하고 외의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자기가 사는 곳을 절대로 대주지 않았다. 그가 걸어오는 방향을 보면 아마 정거장 뒤에 있는 진펄 근처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언젠가 나는 이렇게 물었다.
"정거장 뒤에서 사느냐?"
그러자 당황한 그는 머리를 저었다.
"아니에요. 우리 집은 협회 옆에 있어요."
물론 엉터리 없는 거짓말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일부러 이쪽으로 길을 에돌아와서 놀곤 했는데 야간부에서 공부가 끝날 때까지 절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밤 어둑시근한 할머니의 방에서 밥을 퍼먹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상한데'하고 나는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 그렇게 말했는지 명확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이상한데' 하고 중얼거렸다. 그의 모습이 어쩐지 나와 관계가 있는 것 같았지만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움츠러들어 구부정한 잔등이며 얼굴과 입모습, 젓가락을 쥐는 것까지. 마지막에는 내가 숨이 막힐 것 같아서 묵묵히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 후에 나는 별로 그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중에 그와 나 사이에는 참으로 기묘한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화자 남선생이 조선인인 것을 알고 야마다 하루오가 "조선사람 바보!"라며 놀려대는데 그 야마다 하루오의 어머니가 아버지칼에 머리를 맞고 병원에 실려오게 된다. 하루오는 어머니가 조선인일리가 없다면서 찾아가 보려 하지 않는다.
나는 이웃사람들로부터 수모받고 배척 당하고 있는 동족의 한 여인을 상상했다. 그리고 일본사람의 피와 조선사람의 피를 받은 한 소년의 내부에서 조화되지 않는 이원적인 것이 분열되고 있는 비극을 생각했다. '아버지의 것'에 대한 무조건적 헌신과 '어머니의 것'에 대한 맹목적인 배척, 그 둘이 언제나 서로 싸우고 있을 것이다. 더욱이 몸을 빈궁 속에 잠그고 있는 소년이고 보면 순진하게 어머니의 애정 세계에 젖어들 수 없게 제지당한 것이 틀림없다. 그는 내놓고 어머니의 가슴에 안길 수 없다. 그러나 '어머니의 것'에 대한 따뜻한 숨결은 맥박치고 있을 것이다. 그가 조선사람을 볼 때마다 거의 충동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조선사람, 조선사람 하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심정을 나는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본 첫순간부터 조선사람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품으면서도 내내 나르 ㄹ따라다니지 ㅇ낳았는가. 그것은 확실히 나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어머니의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그리움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통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하나의 굴절된 표현임에 틀림없다. 사실 그는 어머니가 누워 있는 병원으로 찾아가 ㄹ대신 나 있는 곳으로 왔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찾아가는 심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루오는 결국 어머니가 상처에 붙이곤하던 썬담배를 몰래 쥐고 병원을 방문하고 남선생 품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내가 아 이것이 조선의 민족성이었구나 싶은 결말이 이어진다.
"이군은 훌륭한 운전수가 되었는데 너는 커서 무엇이 될 작정이냐."
나는 하루오를 돌아다보며 즐거운 어조로 물었다.
"난 무용가가 될래요."
그는 별안간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 나는 적이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일시에 그의 몸이 빛을 뿜는 것만 같았다. "무용가가 된단 말이지." 정말로 훌륭한 무용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런가."
"응, 난 춤추는 게 좋아요. 그렇지만 밝은 데서는 안 돼요, 무용은 캄캄한 데서 하는 거에요. 선생님은 싫어요?"
"그건 정말 멋있겠지. 그러고 보면 너의 몸매가 잘생겼다."
나는 몽상하듯이 말했다.
"선생님도 무용을 좋아한단다...."
나의 눈앞에는 출신이 남다르고 학대와 구박 속에서 짓눌리기만 한 한 소년이 무대 위에서 서로 엇갈리는 불고 푸른 갖가지 빛을 쫓으며 빛발 속으로 춤추며 돌아가는 모습이 얼른거렸다. 나는 온몸이 생신한 환희와 감격으로 넘쳐나는 것 같았다. 그도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짓고 나를 지켜 보았다.
"선생님도 무용을 만들어 본 적이 있어. 선생님도 어두운 데서 춤추는 걸 좋아한단다. 그래 이제부터 선생님과 함께 무용 공부를 하자. 잘하게 되면 더 훌륭한 선생한테 데려다 주지."
나는 빈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한때는 무용가가 되려고 무용창작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
"응"
그의 눈은 푸른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할 때는 무용이라니, 분노도 없고, 승리하리라 투지도 없고 정말 생뚱맞다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조성진이 쇼팽 콩쿨에서 우승하질 않나, BTS가 빌보드 1위를 하고 더나가서 유엔에서 춤을 추질 않나, 강수진, 김기민 등에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질 않나, 요즘은 오징어 게임까지. 이에 대해서 김구 선생님 말씀을 많이들 이야기 하는데 나는 이 짧은 단편의 생뚱맞아 보였던 결말이 이렇게 정확한 것이었나 싶은 생각에 혼자 살짝 놀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