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복, 우리말 어감 사전(안상순, 유유, 2021)에서
누가 시키는 것도 그렇다고 어떤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엇보다 느리고 게으른 내 천성 탓에 끝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시몬 베유의 <노예적이지 않은 노동의 첫째 조건>을 번역하다가 un bien, le bien, les biens...을 무슨 말로 번역해야 하나 누가 보면 무식한 고민을 하다가 보게된 내용.
먼저 프랑스어 사전(네이버 사전의 동아 프라임)의 bien의 정의
1.부사 : 능란하게, 잘, 만족스럽게, 훌륭하게, 적절하게, 올바르게, 이치에 맞게, 매우, 몹시, 대단히, 훨씬, 바로, 참으로, 정말, 분명히, 오히려, 차라리, 반대로
2. 형용사 : 좋은, 양호한, 만족스러운, 건강이 좋은, 몸이 편한, 기분이 좋은, 안락한, 잘 생긴, 아름다운, 적합한, 유능한, 선량한, 착한, 진실한, 올바른, 사이가 좋은, 흥미로운, 재미있는
3. 명사 : 선, 선행, 덕행, 자선, 유리한, 이익, 이득, 유용성, 행복, 소중한 것, 재산, 재(財;재물 재), 재화(財貨), 우수
관사가 붙었으니 명사로 사용된 것인데 우리가 추상명사로 사용하는 행복, 행운, 기쁨, 즐거움에 해당하는 프랑스어로는 le bonheur가 있으니 선이나 덕행, 이익, 재산 그런 의미로 씌였을 텐데 내 머리 속 사고가 이상한 건지 도무지 선과 재물이 연결되는 지점, 그 와중에 놓인 행복이라는 단어가 참 궁금하던 차였다. 우리말 어감 사전의 설명을 옮겨 본다.
(...)
비록 행복을 찾아가는 길은 수천수만 개일지라도 행복이 무엇인지는 단 한 줄로 압축할 수 있다. 곧 '행복'은 즐겁거나 기뻐서 삶이 만족스럽다고 느끼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렇다고 즐거움이나 기쁨 자체가 행복은 아니다. 재미 있는 놀이를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행복은 아니며, 옛 친구와 해후하는 기쁨이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행복은 즐거움, 기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삶이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여겨지는 상태를 일컫는다. 다시 말해 삶에서 환희와 만족을 느끼는 상태가 행복이다.
'복'은 삶에서 누리는 좋은 운수를 가리킨다. 누군가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 재물 복을 타고난 것이고, 몸이 아주 건강하다면 건강 복을 타고난 것이다. 한마디로 복은 삶을 풍요롭고 활기차게 해 주는 상서로운 힘이다.
행복과 복은 누구나 바라는 좋은 것이지만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행복은 주관적인 감정인 반면 복은 객관적 현상이다.
가. 행복을/복을 빌다.
나. 두 사람은 지금 달콤한 행복에/복(x)에 젖어 있다.
행복을 비는 일과 복을 비는 일은 얼핏 같아 보이지만 서로 구별되는 행위이다. 자식의 행복을 비는 일이 자식이 삶에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기를 기원하는 일이라면(복을 빌면서 행복을 비는 것이라고 믿는 이도 있을 수는 있다), 자식이 복을 받기를 비는 일은 자식이 출세를 하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거나 돈을 많이 벌기를 기원하는 일이다. 또한 행복은 주관적 감정 상태이므로 그 느낌에 젖거나 도취할 수 있지만 복은 감정이나 기분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므로 그럴 수 없다.
둘째, 행복이 마음먹기에 따라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라면, 복은 생래적으로 가지는 것이거나 초월적 존재나 힘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다. 감사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의/복(x)의 비결이다.
라. 새해 복/행복(x) 많이 받으세요.
가진 것이 없어도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삶이 행복의 비결일 수 있지만 복의 비결일 수는 없다. 복은 행복과 달리 자기 의지로 선택할 수도, 욕망을 내려놓음으로써 얻을 수도 없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주어질 뿐이다. 따라서 새해 첫날 덕담으로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은 가능하지만 행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은 불가능하다.
셋째, 행복은 '-하다'와 결합하여 형용사를 파생하는 복은 '-되다'와 결합하여 형용사를 파생한다. 상태성이 있는 일부 명사나 어근 등에 '-하다'가 붙어서 형용사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행복하다'가 그러하고, 일부 명사나 어근, 부사 등에 '-되다'가 붙어 형용사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복되다'가 그러하다. '행복하다'가 즐겁거나 기뻐서 삶이 만족스럽다고 느껴지는 상태에 있는 것이라면, '복되다'는 복을 받거나 누리고 있어 즐거움이나 기쁨을 느끼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행복은 19세기 후반에 영어의 'hapiness'를 일본에서 번역한 근대 한자어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개화기 때 일본에서 수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고종실록>의 "인세(人世)의 질서(秩序)를 유지(維持)하고 사회(社會)의 행복(幸福)을 증진(增進)하라."(<고종실록>,고종32년,1895)에서 행복이 처음 등장했다.
그에 비해 복은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의 생활과 의식을 지배해 온 관념이다. 특히 중국 <<서경書經)에 나오는 오복(五福)은 우리 문화에서도 아주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 다섯 가지는 장수하는 것, 부유한 것, 건강한 것, 좋은 덕을 가진 것,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가리킨다.
시몬 베유의 <노예적이지 않은 노동의 첫째 조건>은 이렇게 시작한다.
Il y a dans le travail des mains et en général dans le travail d'exécution, qui est le travail proprement dit, un élément irréductible de servitude que même une parfaite équité sociale n'effacerait pas. C'est le fait qu'il est gouverné par la nécessité, non par la finalité. On l'exécute à cause d'un besoin, non en vue d'un bien ; « parce qu'on a besoin de gagner sa vie », comme disent ceux qui y passent leur existence. On fournit un effort au terme duquel, à tous égards, on n'aura pas autre chose que ce qu'on a. Sans cet effort, on perdrait ce qu'on a.
(손으로 하는 일, 소위 노동이라 하는 것에는 완벽한 사회 정의의 구현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노예상태라는 간단치 않은 요소가 있다. 궁극목적이 아닌 필요가 노동을 지배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필요 때문이지 득이 있어서가 아니다. ‘먹고 사는 게 필요하다’고 일터에 있는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노력을 제공하지만 궁극에는 모든 면에서 있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수고조차 하지 않는다면 있는 것도 잃게 되리라.)
뭔가 끌리는데 왠지 정확하게 이해를 못하는 나 자신 한심하게 생각하면서 그래도, 시몬 베유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가 궁금해 다음 문장으로 일단 넘어가 본다.
궁극목적(finalité)이 행복과 연결시켜주는 개념인 것 같다....
일단, 득, 이익의 뜻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탬이 되는 것', 보태다라는 말의 뜻이 '모자라는 것을 더하여 채우다', '이미 있던 것에 더하여 많아지게 하다'니까... 필요의 뜻이 '반드시 요구되는 바가 있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