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김은실 엮음, 권김현영외 12인 지음, 휴머니스트, 2020.

빨간차무다리아줌 2020. 9. 15. 16:34

상처받아도 그것으로 인생이 끝나지 않고, 약하고 부족하고 좀 이상하고 편해도 그것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사는 여러 모습의 하나라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는 것, 이것이 '피해자 페미니즘'을 넘어서는 다음 단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44쪽)

: 불문학에서 랭보와 베를렌느를 배울 때였다. 한 선배 언니는 말했다.  그들의 작품을 왜 공부해야 하나 자괴감이 든다고.  나 역시 인간의 깊은 내면을 그렸다는 작품과 치열한 작가들의 삶에 공감하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가 인간에게 내재된 보편적 감성을 천재적인 시적 감수성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에 이의가 없다. 그들은 상처받고 약하고 부족하고 이상한 비주류이기에 오늘 날 여성의 삶을 사는 나와 비로소 동일시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나와 같은 목소리를 찾아 같이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똑같은 목소리는 단 하나도 없다. 내가 '여성'으로 묶일 때 이미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언어는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사는 여러 모습의 하나'이면 그뿐이다.  

"아무도 죽이지 않는" 운동은 가능할까? (아무도 짓밟지 않는 운동) (60쪽)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운동은 정말이지 어떻게도 정당화될 수 없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위해주자'라거나 '여성도 이겨보자'는 것이 아니라, 승패를 넘어서는 완전히 다른 사회, 약한 사람이 아무것도 '극복'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삶을 상상하자는 제안이라는 것을 기억하는게 중요하다.(99쪽)

: 특히 "약한 사람이 아무것도 '극복'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삶을 상상하자"는 말이 무엇보다 와닿는다. 위해주든 이기든 모두 여자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면에서 같다.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인 세상에 누가 누구를 이기고 어떤 대상을 극복할 필요가 있을까? 그 어느 때보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시대이다. 나는 무엇을 상상하는 과정에 살고 있을까? 

여성은 다양한 상황에서 살고 있다. 자신이 시민이 아니라 여성으로만 '취급'되고 있다는 현실 인식은 페미니즘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163쪽)

: 상황을 인식 후 현실 타개책 강구 필수. 인식한채로 머물러 있는 것은 여전히 백마탄 왕자를 기다리는 백설공주로 남을 뿐. 어떻게 하면 마녀(나쁜 여성, 나쁜 남성)에게 죽임당하지 않고 그렇다고 숲속에서 잠만자지 않으며 이 성을, 이 숲을 빠져나갈 것인가? 그리고 유일한 후계자인 공주(민주주의 시민)로서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힘 많이 빠진 50대 공주는 무엇을 할 수 있나(웃픈 현실)? 

여성주의는 "많은 여성이 하나가 되자"는 사유가 아니다. 여성주의는 대표적인 정체성의 정치다. 이는 여성은 모두 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동일시가 필요한 정치다.

: 따로따로 하나되어 앞으로 앞으로! 쌀 한톨한톨 부서지지 않고 맛있는 밥이 되야지 떡이되면 안된다. 주물럭 주물럭해서 인스타용 꽃떡이 되어서도 안된다. 

여성의 상황은 천차만별인데, '신자유주의적 여성주의'는 단일한 여성을 상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안타깝게도 많은 여성이 '신자유주의적 여성주의'를 지지하고, 그것이 '원래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164쪽)

: 원래 페미니즘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신자유주의적' 이라면 이미 페미니즘과 함께 하도록 할 수 없다는 입장. 50대 무다리 아줌마는 자유를 원하지만 '신자유주의자'는 아니라는 면에서... 

여성주의는 '혁명'이 아니라 일상에 균열을 냄으로써 서구 남성 문명의 틈새를 확대하는 '진지전'이다. 그들과 같아져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165쪽)

: '일상의 균열', '서구 남성 문명의 틈새를 확대하는 '진지전''이며 숫자와 단결된 행동과 목소리로 이뤄내는 혁명이 아니라는 말에 생각이 많아짐과 동시에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