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EpVXH3Vm2wg?si=pnb1afPd9DHpQJpb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나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았고 빌에반스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My foolish heart를 들었다. 그러면 이내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유를 설명해 준다.
포트레이트 인 재즈,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그린이 와다 마코토, 문학사상, 2013, 76-80쪽.
Bill Evans(빌 에번스)
피아니스트 빌 에번스가 지닌 자질 중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이 피아노 트리오란 포맷을 통해 나타나고 있음은 세인의 공통된 의견이다. 범위를 좀 더 좁히면, 스콧 라파로Scott LaFaro가 베이스를 연주한 피아노 트리오가 될 것이다. 앨범을 하면<포트레이트 인 재즈>,<왈츠 포 데비><선데이 앳 빌리지 뱅가드>, <익스플로레이션>이렇게 네 장이다. 이런 앨범을 녹음하고 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리버사이드라는 레코드 회사는 사람들에게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이 앨범들 속에서 에번스의 연주는 불평의 여지가 없을 만큼 훌륭하다. 우리는 인간의 자아가(그것도 상당한 문제를 껴안고 있었을 자아가) 재능이란 여과 장치를 통과하면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보석이 되어 땅으로 톡톡 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그 복잡하고 정교하며 치밀한 여과 장치를 정확하게 포착(안정화)하고 또 그 내향성을 상대화하고 활성화하고 있는 것이 스콧 라파로의 봄날처럼 싱그럽고 숲처럼 깊은 베이스 연주다. 그 신선한 숨결은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세속적인 영역을 소리 없이 해제하고 그 깊은 곳에 잠겨 있는 혼을 일깨운다. 이 시점에서 에번스 없는 라파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라파로 없는 에번스 또한 존재할 수 없으니,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기적적인 해후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의 에번스를 정의하는 기본적인 틀이었던 밥 이디엄이 실로 어이없이 해체되고, 새로운 지평이 그 앞에--그리고 우리 앞에--출현한다. 우리는 낡은 옷을 벗어던지고 해방된다. 우리의 피부는 새루운 색을 획득하고 우리의 의식은 새로운 세포를 획득한다. 거기에는 불합리할 정도로 뜨거운 열의 발산이 있다. 세계를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세계를 날카롭게 도려내믐 마음이 있다.
스콧 라파로의 너무 이른 죽음(1961년)으로 두 사람의 멋진 인터플레이는 유감스럽게도 몇 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그리고 또 에번스의 완벽주의 탓에 결국 남겨진 녹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라파로가 죽은 후, 에번스는 정규 베이시스트를 몇 명 맞았지만 라파로와 함께 빚어냈던 자발적인 독창성은 두 번 다시 재현되지 않았다. 물론 에번스는 그 후에도 몇몇 탁월한 연주를 남겼다. 하지만 라파로 이후에는 '자아의 상대화'를 통한 보다 새로운 지평을 재즈 팬 앞에 제시하지 못했다. 섬세하고 내향적인 자질은 변함없이 유지되었으나, 과거 그의 음악을 뜨겁게 해주었던 열의 발산은 사라지고 말았다. 잃어버린 단 한 번의 숙명적인 사랑처럼.
앨범 <왈츠 포 데비>는 CD말고, 옛날처럼 몸을 사용하여 LP로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 앨범은 한 면당 세 곡쯤 듣고서 일단 바늘을 들고 물리저긍로 한숨을 돌려야 비로소 본래의 <왈츠 포 데비>라는 작품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트랙이 다 멋지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My foolish Heart>. 달콤한 곡이다. 이렇게까지 몸에 파고들면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다. 세계를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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