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젊은 남자, 아니 에르노, 윤석헌 역, 레모, 2023.

빨간차무다리아줌 2024. 2. 16. 22:37

내가 쓰지 않으면 사건들은 그 끝을 보지 못한다. 그저 일어난 일일 뿐.

13쪽  글을 쓰도록 나 자신을 몰아붙이기 위해 나는 종종 섹스를 했다. ...한 권의 책을 쓰는 것보다 더 강렬한 쾌락은 없다는 확신을 갖고 싶었다...그 책을 쓰기 시작하고 싶은 욕망이...

29쪽 그는 내 삶을 텍스트를 지우고 그 자리에 새로운 텍스트를 쓸 수 있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상한 양피지로 바꾸어 놓았다. 

42쪽 나는 영원한 동시에 죽어있는 느낌을 받았다. 

43쪽 나는 꾸준히 글을 썼고 거리두기라는 단호한 전략으로 이별을 위해 노력했다.

     20세기의 마지막 가을이었다. 나는 세번 째 밀레니엄 속으로 홀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어 행복한 나를 발견했다.

91쪽 <옮긴이의 말>에서. 우리가 아니 에르노를 읽는 이유는 작품 속 인물을 하찮은 가십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독특한 글쓰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데 있다. 

옮긴이는 작가에게 이 '젊은 남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느'처럼 기억의 전달자 라고 설명해준다. 나는 내게 '기억의 전달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책을 쓰기 시작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켜줄 그 무엇. 그것이 무얼까 물음표를 지우지 못하고 하루를 배회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오늘 짧디 짧은 소설 <<젊은 남자>>을 읽고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한 연설을 몇 마디 옮겨 적는다.

 글쓰기에 대한 성찰 없이 어떻게 삶을 성찰할 수 있을까요? 글쓰기가 존재들과 사물들에 대해 경탄하거나 내면화하면서 재현한 것들을 강화하는지 혹은 어지럽히는지, 스스로 묻지 않고 삶을 성찰할 수 있을까요?
나는 계속해서 '나는'으로 시작되는 말하기가 필요했습니다.
모든 산건은 개인적인 방식으로--"이 일은 바로 내게 일어난 일이다" -- 냉혹하게 체험됩니다. 책 속의 '나는'이 어떤 식으로든 투명해진다면, 그 사건들은 독자의 '나는'이 그 자리를 차지할 때에만 동일하게 읽힐 수 있습니다. 결국 '나는'은 개인을 넘어서고, 개별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에 도달합니다. 
한 권의 책은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고, 참아내고 감추었던 경험들의 고독을 깨트리는 데, 스스로 다르게 생각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