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유 6

시몬느 베유, <<해석에 반대한다>>, 수전 손택,이후, 2002에서

우리 남편이 태어난 해인 1966년에 출간된 수전 손택의 글에 그 즈음 미국에서 Simone Weil의 글이 많이 읽히고 있는 데 대한 의견이 들어 있어 옮겨 보았다. 지금은 1966년도 아니고 글이 번역되어 나온 2002년도 아닌데 나는 왜 시몬의 글을 읽으면서 자꾸 생각이란 걸 하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수전 손택의 목소리를 빌려 나를 돌아 본다. 아마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하지 못하는 나의 게으름에 대한 죄책감이 시몬 베유를 자꾸 읽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이유도 궁리해 본다. ㅎㅎ. 시몬느 베이유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세계의 문화적 영웅들은 반 자유주의적이요 반 부르주아적이다. 그들은 중언부언하고 도가 지나치며 불손한 작가들, 즉 자신들이 지닌 개인적 권위와 지적 열정뿐 아니라, 개..

인간이 우주에 홀로 존재한다면 그에게는 어떤 권리도 없겠지만 그래도 의무는 있을 것이다-시몬 베유

Caricatures : les manifestations contre Emmanuel Macron se multiplient dans (웹 보기) 2020년 10월 29일 (4일전) 프랑스 국기가 불에 타고 엠마누엘 마크롱 대통령의 사진이 발에 밟힙니다.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시오 거리와 몇몇 무슬림 국가에 분노가 들끓고 있습니다. 일부 신자들은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서 출간된 예언자 마호메드의 풍자화를 이해하지 못하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마호메드를 풍자한 그림을 보여줬다고 얼마전 살해 당한 교사를 기리며 풍자의 자유를 열렬히 옹호한 엠마누엘 마크롱의 연설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풍자화의 출간을 반대합니다. 무슬림으로서 우리는 슬픕니다. 켤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

일상다반사 2020.11.02

영혼의 욕구(les Besoins de l'Ame) , 시몬 베유

뿌리내림-인간에 대한 의무 선언의 서곡, 시몬 베유 지음, 이세진 옮김, 이제이북스, 2013. 도입부분을 그대로 옮겨 적어 본다. 이세진님의 번역을 그대로 읽으며 원문을 대조해 보았다. 아, 정말 어렵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 권리와 의무, 그리고 인간 존중에 대한 개념을 개인의 차원에서 다신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다. 뿌리내림 I . 영혼의 욕구 의무 개념은 권리 개념보다 우선한다. 권리 개념은 의무 개념에 종속되며 상대적이다. 권리는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통해서만 효력이 있다. 어느 한 권리의 실현은 그 권리를 지닌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어떠어떠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타자들에게서 온다. 의무는 인정받으면 바로 효력이 있다. 하지만 아무에..

왜 오늘날 시몬 베유를 읽어야 하는가?(Radio France Culture,2018.12.11)

한 번 읽기 시작하니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왜 시몬 베유를 읽는가?' 나에게 하는 질문이다. 나의 터무니 없는 불어 실력 탓도 있을 테고, 번역 글이 저도 모르게 던지는 모호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늘 그렇듯이 천재적인 머리도 빼어난 순발력도 없는 나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이 한 번 든 의문을 버리지 못하고 품고 또 품는다. 곯지 않고 병아리라도 나온다면 좋으련만. "돈을 좀 더 준다고 인간의 존엄성을 살 수는 없습니다." 로베르 슈나비에(철학자) 시몬 베유는 정치가, 언론인, 노동운동가 등 그가 “말의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철학자 시몬 베유(1909-1934)는 25세에 공장에 들어가 일합니다. 그곳에서 노동의 소외 문제를 고발합니다. 1. “말의..

시몬 베유 <노동의 신비> 번역(2)

인간이 챗바퀴를 도는 다람쥐임을 알고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는다면 구원이 가까이 있다. 육체노동의 고통이 극심한 것은 그저 존재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노예란 그저 존재하기 위해서가 아니면, 그들이 수고하는 목적으로 어떤 이득도 허락되지 않는 이들이다. 노예는 그러므로 초연하거나 무위무책해야 한다. 지상의 그 어떤 궁극의 목적도 노동자들을 신에게서 떼어놓지 못한다. 노동자들만이 그런 위치에 있다. 다른 계급들은 모두 저마다 특수한 목적을 전제하고 이 특수 목적들이 인간과 순수한 선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이런 종류의 방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에겐 남아서 버려야 할 것이 없다. 득이 되어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 끌려서가 아니라 떠밀려서 - 자신의..

시몬 베유 <노동의 신비> 번역(1)

노동이란 돈을 버는 것이라고 그런 일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렇게 바라보니 나의 매일매일의 수고는 그 어느 것도 생산적이지 않았다.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 이런 나의 생각을 전환시켜준 글이 바로 시몬 베유(Simone Weil)의 중 라는 글이었다. 2년이 지나 문득 책을 들춰 같은 부분을 읽어 보았는데 이런 글이었던가 싶어 원문을 찾아 보았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가를 확인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번역가들의 노고가 무색하게 뚝뚝 연결이 끊어졌다. 내가 이해해 보자고 이 꼭지를 번역하고 있다. 번역은 반역이라고, 얼핏본 세계와 시간을 들여 보는 세계는 모습이 많이 다르다. 아, 아, 내 머리를 깨뜨리고 싶다. (제사 준비를 앞두고 주기도문을 외듯이 글을 곱씹어 본다.) 노동의 신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