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 속에
- 이용악
배추밭 이랑을 노오란 배추꽃 이랑을
숨 가쁘게 마구 웃으며 달리는 것은
어디서 네가 나즉히 부르기 때문에
배추꽃 속에 살며시 흩어놓은 꽃가루 속에
나두야 숨어서 너를 부르고 싶기 때문에
- 오늘 두 시간을 달려 문옥언니를 만나 묵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긴긴 수다를 맛나게 즐기고 언니가 만든 막걸리를 들고 돌아와 책상에 앉으니 문득 이 시가 떠올라 그냥 적었다. 나는 사실 노랗다는 배추꽃을 본 적이 없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김치를 쉽게 담그시는 시어머니를 만나서 시나 소설에서나 읽었던 것들 그저 단어로만 알던 것을 실제로 보고 듣고 맛볼 수 있었다. 그 세계는 시어머니 찬스를 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 문옥언니 덕분에 쓸 수 있었던 오늘의 시어머니 찬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 시를 읽으면 왠지 막걸리 한잔 걸친 ... 그런 기분을 느낀다. 나물 캐는 봄처녀와는 다른 그런 느낌. 맛있겠다는 생각도. 그냥 마냥 내맘대로이고 싶은 기분좋은 밤에 몇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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