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봉사는 자연스러운 생계유지 방법이 아니다, <<무깟디마:이슬람 역사와 문명에 대한 기록>>,이븐 칼둔, 김정아 역,2020.

빨간차무다리아줌 2024. 11. 20. 19:36

작년 어버이 날 아들래미가 <<듄>> 전집을 선물로 던져줘 10월인가부터 읽기 시작했다. 내가 아들에게 도서관에서 이렇게 긴 내용인데 빌려가는 사람이 많다 하고 때마침 영화도 나오고 그래서였던 것 같다. 읽기 시작하긴 했는데 이거저거 봐야할 다른 책도 많아서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는데 올 여름, 아들이 군대를 가고 나니 허전한 마음에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다.  1권을 겨우 다 읽고 나니 인물 이름이랑 행성 이름이랑 등등이 익숙해졌다. 그제야 듄을 해설해 주는 유튜브 영상이 눈에 들어왔고 무슨 얘길 하는지 알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한 동영상에서 자신이 참고하고 있는 책을 소개해 주는데 <<무깟디마>>라는 생경한 제목이 있길래 어머, 이런 책도 번역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네 싶어 도서관에 검색해 보았더니 와, 있다. 그런데..., 1123쪽. 벽돌책도 이런 벽돌책이 없는 거다. 웬만하면 통독을, 어지간해선 순서대로 읽는 편인데, 3초도 안 돼 "포기!"를 외쳤다. 그래도 무슨 내용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서 차례 제목을 훑어 보는데 '봉사는 자연스러운 생계유지 방법이 아니다' 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요즘 백수 생활을 하고 있어서인가, 그래도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고 싶어 봉사를 하는데, 당연하지 봉사는 생계유지하려고 하는 일은 아니잖아... 그런 생각이 들어 그 부분만 펼쳤다. 

봉사는 자연스러운 생계유지 방법이 아니다

군주는 정치권력과 군인, 경찰, 서기 등의 사람을 부리는 왕권을 잘 활용해야만 한다. 그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고용하고 자신의 재물창고에서 급여를 지불함으로써 그들의 생계를 책임진다. 이것은 모두 정치권력의 행사에 포함된다. 정치권력은 그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거대한 왕권은 그들이 종사하는 다양한 분야의 힘의 원천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보자면,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직접 처리하지 않거나 그럴 능력이 없다. 그들은 탐닉과 사치스러운 환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일을 해 줄 사람을 고용하고 자신의 재물에서 급료를 준다. 이런 상황은 인간의 본질적인 남자다움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찬양받을 일은 아니다. 이런 사람은 남에게 의지하는 위약함을 보이고 지출의 증가를 초래한다. 남자다움의 관점에서는 회피해야 할 나약함과 우유부단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습관은 인간 본성이 익숙함에 기울도록 만든다. 인간은 조상의 자식이 아니라 습관의 자식이다. 그런데 신뢰와 만족을 모두 주는 하인을 찾는 일은 어렵다. 요즘의 하인은 네 종류가 있다. 우선, 일을 잘하고 신뢰할 만한 하인이 있다. 능력과 신뢰를 겸비한 자이다. 이 두 가지 면에서 모두 반대되는 경우가 있는데, 능력도 없고 신뢰도 없는 하인이다. 두 가지 중 한 가지만 반대되는 경우도 있는데, 능력은 있고 신뢰가 없거나 능력은 없고 신뢰가 있는 경우이다. 첫 번째 경우의 예를 보자면 능력과 신뢰를 겸비한 자인데, 일반인은 그런 자를 구하기 힘들다. 그런 능력과 신뢰가 있다면 남의 아래서 봉사할 이유가 없고 자신의 힘으로 더 많이 벌 수 있으므로 이런 봉사로 재물을 획득하는 것을 경멸한다.고위 관직의 아미르들이나 그런 자를 고용할 수 있다. 고위직에 대한 선망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두 번째의 경우 능력과 신뢰가 모두 없는 하인을 보자면 이는 고용주에게 해를 주므로 그런 자를 고용해서는 안 된다. 아무도 이런 하인을 고용하려 하지 않는다. 이제 남은 경우의 수는 다른 두 종류의 하인으로 신뢰가 있고 능력이 없거나 신뢰가 없고 능력이 있는 경우이다.이 두 종류에 대한 선호도는 고용주 나름의 이유가 다양하다. 내 생각에는 신뢰가 없어도 능력이 있는 하인이 낫다. 그는 손해를 주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단, 그가 주인에게 사기나 배신을 할 수 있으므로 최대한 경계해야 한다. 반대로 신뢰가 있어도 능력이 없는 하인은 고용주에게 해를 끼치게 되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다.주인은 손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이를 잘 알아두라. 사람을 부리는 데 있어 만족함을 얻고 싶을 때 이를 고용의 원칙으로 삼으라. 지고하신 알라께서는 원하는 바대로 행하실 능력이 있다. 

아마도 '봉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서비스service'가 아닐까. 그 어원은 노예들의 섬김 노동... 그런 거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바로 "국민을 섬기겠다" 약속했던 어떤 대통령 말이 떠오르고 그런 다음 다시 읽으니, 신뢰가 있고 능력이 없는 사람보다는 신뢰는 없어도 능력이 있는 사람을 고용하라는 말도 놀랍고, '능력과 신뢰가 모두 없는 하인을 보자면 ...고용주에게 해를 주므로 그런 자를 고용해서는 안된다. 아무도 이런 하인을 고용하려 하지 않는다.' 하고 말하는 단호함에 더 놀라게 된다. 14세기 학자 이븐 칼둔의 통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