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얼굴을 그려보고 있다. 쉰 넷의 아줌마가 젊은 남자 얼굴을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리니 사람들이 의아해 한다. 나도 잘 모르겠다. 내 맘이 뭘 향해 있는지. 애들한테 잘 하는 질문, '넌 뭐가 되려고 이러니?' . 나에게 그리고 내 작은 그림에게 문득 문득 하루에 몇 번씩 묻기 시작했다.
정중원의 책을 다시 펼쳤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초상화'. 301쪽부터 시작되는 2부 두 번째 장 제목이다.
"실물과 다른 초상화가 존재하는 까닭은, 자신의 초상화와 비슷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는 살바도르 달리의 말로 시작하는 2부에서는 초상화의 의의를 찾는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285쪽 (루시안) 프로이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을 그렸지만 그가 모델의 이름을 그림 제목으로 붙이는 일은 드물었다. 대부분의 초상화에 <의자 위의 붉은 머리 남자>,<자고 있는 연금 관리자>,<줄무늬 잠옷을 입은 여자아이>, <벗은 남자, 뒷모습>, <달걀이 있는 나체>와 같은 제목이 붙었다. 동료 화가였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연인, 조지 다이어를 그린 초상화의 제목은 그저 <파란 셔츠를 입은 남자>였으며 영국군 고위 장교이자 콘월 공작부인의 전남편 앤드루 파커 보울스를 그린 전신 초상화도 단순히 <준장>이라 이름 붙였다. 프로이드에게 초상화가 닮음을 얼마나 정확히 포착했느냐 하는 문제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인물들 각자의 생김새를 세밀하게 모사하는 행위보다 화가의 시선을 거쳐 탄생하는 결과로서의 그림그 자체와 그것이 이야기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본질을 더 중요시했다. 프로이드는 초상화란 사람과 '닮은' 그림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그림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화가가 그토록 충실히 복제한 모델이 그림옆에 걸리지는 않을 것이므로, 즉 그림은 단독으로 전시될 것이므로, 그것이 모델을 얼마나 정확히 복제했느냐 하는 문제는 관심의 대상일 수 없다. 작품이 가진 신빙성 여부는 작품이 그 자체로서 무엇인가, 즉 그것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286쪽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동시에 평범하다. 나에게 각별한 얼굴이 다른이에게는 범상할 수 있고, 반대로 내게 무관심한 얼굴이 누군가에게는 비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얼굴을 담은 작품은 역설적이면서도 자명한 사실 하나를 상기시킨다. 일반적인 것이 특수할 수 있고, 특수한 것이 일반적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303쪽 제욱시스는 눈앞에 있는,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 내는 작업에서도 결국 필요한 것은 현실에 실재하는 대상이다.
310쪽 그랜트 우드는 그림에 등장하는 집을 먼저 보고, 그 안에 살 법한 사람들을 나름대로 상상한 뒤 그 이미지에 걸맞은 모델을 찾았다.
313쪽 20세기 중반의 전설적인 일러스트레이터 노먼 록웰이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던 까닭도 연출자로서의 빼어난 능력 덕분이었다.
315쪽 일단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떠오르면, 직접 고용한 전문 사진사와 함께 다양한 참고 사진을 촬영했다.
318쪽 록웰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화가들은 아무 얼굴이나 참고해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에 이건 틀린 말입니다. 마음속에 분명하게 구상한 바가 있다면, 그에 가장 이상적인 모델을 찾는 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320쪽 이렇게 수고로운 과정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록웰은 비로소 캔버스 앞에 앉아 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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