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이창실 옮김, 문학동네, 2016.

빨간차무다리아줌 2025. 12. 29. 21:53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무엇보다 책을 고독의 피신처로 삼는 주인공 한탸의 독백을 통한, 책에 바치는 오마주다.' 11월 말 <종이의 기억>이라는 전시에 참여한 뒤여서인지 완전 몰입해 읽었다. 파괴 스캔 작업에서 시작해, 어린이 도서관 대출 사서, 일반실 배가, 책수선 경험에 예술제본, 또 글도 써보면서 책과 정을 쌓아서인지도 모르겠다.  

12쪽.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가 반드시 신사이거나 살인자일 필요는 없다는 헤겔의 생각에 역시 동의하기 때문이다. 나라면, 내가 글을 안다면, 사람들의 지극한 불행과 지극한 행복에 대한 책을 쓰겠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책을 통해, 책에서 배워 안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밑에서, 압축기 안에서 희귀한 책들이 죽어가지만 흐름을 막을 길이 없다.

16쪽. 한번 책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에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지만 고백하지 않을 없는 것이, 순간 나는 꿈속의 아름다운 세계로 떠나 진실 한복판에 가닿게 된다. 날이면 날마다, 하루에도 번씩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21쪽. 2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어느 , 사람들이 압축기에 바구니 가득한 책들을 쏟아놓았다. 순간의 충격이가신 나는그책들 하나를 펼쳐 보았다. 프로이센 왕실 도서관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다음날은 가죽 장정의 무더기가 지하실 천장에서 쏟아져내렸다. 책들의 금박 입힌 단면과 제목이 대기 가득 빛을 발했다.

22쪽. 마지막 트럭이 역에 도착했을 열차 차량들에서는 검댕과 인쇄용 잉크가 뒤섞인 금빛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광경을 목격한 나는 가로등에 몸을 기댄 할말을 잃었다. 광경을 목격한 나는 가로등에 몸을 기댄 할말을 잃었다. 마지가 차량이 안개비 속으로 사라졌을 얼굴에서는 눈물과 빗물이 뒤섞여 흘러내렸다.

23쪽. 그러고 나서 수년이 지난 나는 부르주아 저택들이나 성들의 장서를 통째로 떠맡는 익숙해져 버렸다. 고급스러운 모로코 가죽 장정의 아름다운 책들이었다. 그것들을 나는 화물열차에 가득가득 실었고, 서른번째 차량에 책이 채워지면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값을 매길 없을 만큼 귀중한 장서들은 그곳에서 킬로그램당 1코루나에 팔릴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보고 놀라거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기차가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안에는 이미 불행을 냉정하게 응시하고 감정을 다스릴 있는 힘이 자리했다. 그렇게 나는 파괴 행위에 깃든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25쪽. 그러다 어느 화창한 여름날 외삼촌은 무밭에서 김을 매다가 문득 떠올렸다. 누이는, 그러나까 엄마는, 무라면 사족을 썼다는 것을. 그는 통조림 유골함을 연 뒤 무밭에 엄마의 재를 뿌렸고 나중에 우리는 그 무를 맛있게 먹었다.(나 라디도 그럴 수 있다면...)

27쪽. 지하실에 이토록 많은 생쥐들이 살고 있을 줄이야. 이백, 아니 오백 마리나 될지 모르는 작고 다정한 짐승들 대부분은 반쯤 장님이다. 나와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역시 글자를 먹고 살며, 모로코 가죽 장정의 쾨테와 실러를 선호한다는 .

63쪽. 나는 모자를 위까지 눌러쓰고 길을 건너다가 행인과 부딪쳤다. 정신이 홀랑 나간 듯한 표정의 철학 교수였다. 그는 개의 재떨이처럼 보이는 두꺼운 안경알을 소총의 총신처럼 겨누고 나를 바라보았다.(재밌다)

85쪽.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89쪽. 무엇보다 그들이 장갑에 나는 모욕을 느꼈다. 종이의 감촉을 느끼고 가득 음미하기 위해 나는 절대로 장갑을 끼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기쁨에, 폐지가 지닌 비길 없이 감각적인 매력에 아무도 마음을 두는 같지 않았다.

95쪽. 현장학습을 모양이었다. 여교사는 아이들에게 폐지의 재활용 과정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정말 어이없게도 권을 집어들더니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고는 책의 내용물을 뜯어내는 시범을 당당히 보였다. 그러고 나자 아이들이 순서대로 명씩 책을 들어 표지를 뜯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책들은 방항하며 버텨보려 했지만 작은 손가락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노동자들이 몸짓으로 아이들을 부추겼고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순진한 얼굴들이 환히 빛났다…...나는 끝내 리부시의 가공 공장을 떠올리지 않을 없었다.

98쪽. 그런데도 나는 그가 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꾸짖는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스스로가 비열한 인간처럼 여겨졌다.

98쪽. 나는 멈청한 인간이었고, 작은 압축기보다 미미한 존재였다. 그날 오후 내내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일했다. 부브니의 속도로 종이를 갈퀴로 담았고, 반짝이는 표지의 책들이 곁에서 수다를 떨어대도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 , 그럴 없어, 권의 책도 펼쳐볼 권리가 없어, 잔혹한 한국 형리처럼 냉정해져야 해'라고 쉴새없이 자신을 타일렀다. (소설의 최초 발행년도는 1976년이다)

106쪽. 삼십오 년을 잉크와 얼룩 속에서 일해온 내가, 더럽고 냄새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선물과도 같은 멋진 권을 찾아낼지 모를다는 희망으로 순간을 살아온 내가, 이제 비인간적인 백색 꾸러미들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다니!

120쪽. 그들의 이마에는 모두 별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 삶이 시작되는 순간 저마다의 내면에 싹트는 천재성의 표징이다. 그들의 시선은 힘을 발한다. 소장이 나를 바보 천치라 부르기 전에는 내게서도 샘솟던 힘이다.

130쪽. 반짝이는 책의 장정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131쪽. 나는 여전히 쾌활한 사내다. 그런 내가 자랑스럽고, 부끄러움이 없다….욕조에 들어가는 세네카처럼 나는 한쪽 다리를 압축통에 넣고 잠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