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박완서 in 박완서 소설 <기나긴 하루> , 문학동네, 2012.

빨간차무다리아줌 2023. 4. 5. 19:42

취향도 정치도 레트로가 거센 지금, 박완서 소설이 내 이해의 단초가 되는 일이 많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2008년 가을에 나온 글이다. 

107쪽. 그날 시어머니한테 당한 모욕은 며느리로 하여금 다시는 그분과 화해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4·4회라는 모임 이름은 경성사범 입학년도인 1944년에서 따온 거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당신이 경성사범 출신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할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에 들어갔다는 걸 반드시 밝히고 싶어했다. 

일제시대에 경성사범 들어가는 건 하늘의 별 따기, 전교 일등이나 가능한데 그 전교도 시시한 학교는 안 되고 명문 국민학교라야 된다는 거였다. 그런 식민지적 사고방식은 내 알 바 아니지만 4·4란 이름은 그닥 좋은 이름 같지 않다고 했더니 또 한바탕 강의를 들었다. 우리나라나 죽을 사死자라고 4자를 싫어하지 일본말로는 4가 '요시', 좋은 거, 착한 거하고 통하는 길한 숫자라는 거였다.

4·4회 멤버는 다행히 많지는 않았다. 연세들이 높으니까 돌아가신 분도 있고 그분들의 특별한 우월감에 동조할 만큼 현재의 삶도 유복한 분들만이 동참하는 모임 같았다...

113쪽. 4·4회 멤버들은 열 명 남짓했다. 똑똑한 사람들은 정확하기도 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거의 한꺼번에 시간을 지켜 나타났다. 빈손은 없었다. 케이크나 쿠키, 과일 등이 들려 있었고, 부엌에서 요긴한 행주나 세제를 들고 오는 이도 있었다. 다행히 장미 꽃다발도 있었다.

114쪽. 그들은 집에 들어올 때부터 떠들던 수다를 식탁에서 먹고 마시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주로 같이 늙어가는 동창들 얘기였다. 누구는 암, 누구는 치매, 누구는 뇌졸중에 걸리고, 누구는 과부가 됐다는 우울한 소식에도 그분들의 식욕은 주춤도 안 하고, 심란해지는 것 같지도 않았다.

정년까지 교직사회에서 버티면서 여러 학교를 거친 분들이니까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서 화제도 무궁무진했다. 이름이 잘 안 통할 때는 창씨개명한 이름을 생각해내기도 했다. 걔 있잖아, 준교사 자격증으로 선생 된 애. 또는 지방 사범학교 출신 누구누구라고 출신 학교로 편을 갈라 말하기도 했다. 그때 그 노인네들 표정에 스치는 공통의 우월감을 바라 보면 딱하기도 하고 느글거리기도 했다. 실은 나도 명문고 출신이지만 티 안 내고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그럴 기회가 없어서 못 낸 거지, 동네 아줌마나 문화센터 같은 데서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걸 내세우는 여성을 보면 저이가 시험 보고 들어갔을까 뽑기로 들어갔을까, 그거 먼저 궁금해하는 주제에 말이다. 

118-119쪽. 어느 자리에도 꼭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나 전환을 위해 좋은 일이었다. 시어머니가 선창을 하고 다들 따라 불렀다. 그윽한 애조는 어디선가 들은 듯했지만 가사는 일본말이어서 알아듣지 못했다. 여러 절로 된 노래 가사를 다 아는 사람이 없는지 절이 바뀔 때마다 시어머니가 선창을 했다. 노래가 길어지면서 따라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점점 줄었는데 후렴만은 다 같이 목청을 높이고 표정까지 심각하게 가다듬어가면서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노래가 끝났는데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후렴만을 반복해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뜻인지 모를 후렴은 이러했다. '무까시노 히까리 이마 이즈꼬.' 나는 일본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지만 뒤에 꼬자 붙는 건 여자 이름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시어머니도 친정엄마도 어릴 적 친구를 하나꼬, 아끼꼬 하는 식으로 부르는 걸 들은 일이 있고 일본 영화도 더러 봤으니까. 아마 죽었거나 헤어진 여자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노래 가사임이 분명했다. '이마'는 성, '이즈꼬'는 이름일 테지. 그래도 확실히 해두려고 '이마 이즈꼬'가 여자 이름인가봐요? 하고 좌중에 대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면서 '무까시노 히까리 이마 이즈꼬'라는 후렴 문장 한 소절을 통째로 해석해주었다. '그 옛날의 광영은 지금 어디에'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소절을 왜 그렇게 애타게 반복해 불렀을까. 저분들이 하자 없이 모범적으로 살아온 건 알겠는데 그래도 그렇지, 평생 초등학교 선생 노릇하면서 언제 한번 광내고 살아 본 적이 있다고. 그러면서도 인생 전반에 대한 측은지심 같은 걸로 마음이 울적하게 가라앉았다. 

시어머니가 나에게 이제 가도 좋다는 눈짓을 했다. 그런다고 당장 나오긴 좀 뭣해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제야 곗돈들을 모으다 말고 누가 느닷없이 말했다.

야, 그 배고프던 그 시절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시선이 아득해지는 그들을 뒤로하고 시어머니 아파트를 나오면서 생각했다. 그 노인들이 애타게 찾은 그 옛날의 광영이 그럼 배고픈 시절이었단 말인가. 말도 안 돼. ...

이팝나무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금은 절대 알 수 없는 보릿고개란 것을 넘으며 흰 쌀밥처럼 피는 이 꽃을 희망으로 배고픔을 달래던 시절이 있었다지. 식민지를, 전쟁을, 산업화와 민주화를 겪은 사람들이 동시에 함께 살고 있다.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때 자존감을 버려야 살아 나올 수 있는 군대를 경험한 대부분의 남자들이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나랏일은 이 아픔을 슬픔을 한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있다.  구세대 어머니와 신세대 며느리 사이에서 신세대이기도 하고 구세대이기도 한  화자처럼 나도 50이 넘은 중년,  낀 세대.

이혼한 아들이 며느리가 한 말이라며 화자에게 한 말, "멀미나는 차는 빨리 내리는 게 수지 누가 먼저 멀미가 났냐는 따져서 뭐하게요."(121쪽)

화자는 "걔 참 아큼하구나" 하는데,  나는 "그놈의 쿨은 도대체 어덯게 하는 걸까. 아무튼 부러운 능력이었다."고 말하던 화자가 생각나, '그것 참 쿨 하네!'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