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50

코로나 시대 팔순잔치

2020년 12월 27일 일요일, 시어머니의 팔순잔치. 코로나 확진자 수는 구백 명, 천 명, 천 2백명. 어머니는 며칠 옆구리가 아프시다고 누우셔서 지인들의 전화를 받으시며 용기를 내 물리치료를 받고 오신다. 5인 이상 집합 금지 행정명령. 행인지 불행인지 잔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모두가 받아들이기로 한다. 막내 동서가 장식과 풍선을 택배로 보내온다, 손녀들의 코묻은 손편지를 동봉해서.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아가페의 사랑, 에로스의 사랑 등등 구분해 분석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종류의 사랑은 뭐니뭐니 해도 머니로 표현되고 전달식이라 할 수 있는 이벤트로 완성된다. 동서의 제안과 준비로 5만원 짜리가 스무장이 들어가는 꽃떡케잌을 주문해 찾아 왔다. 코로나 방역을 준수하며 일년 365일 문을 연다..

일상다반사 2021.01.01

당신에게 말걸기, 나호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미연씨, 미연씨에게 김수영 시인의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로 마음아픈 하소연을 했다. 라는 책에서 "그곳이 어디든 점점 좋은 쪽으로 달라진다면 잘 된 거지. 그곳에 꼭 내가 있어야할 필요도 없고, 없어서 아쉬울 일도 아니다"는 글을 읽고 맞아, 굳이 내가 필요 없다는데 관심좀 가져달라고 애걸하기도 나이가 너무 많지 않은가 싶어졌다. 형숙 언니 말대로 치매예방 차원으로 좋은 공부를 했지 하며 편하게 생각하자고 그렇게 살자고 왜 굳이 또 나를 부수려고 하느냐고 나를 나무랐다. 이렇게 반복되는 욕망의 고리에서 그렇게 벗어나려고 애를 써놓고 어김없이 그 고리에 걸려든 줄도 모르고 있었다. 미연씨가 조용히 ..

일상다반사 2020.12.22

번민을 늘어놓다, 김시습

매주 화요일, 이진아 도서관의 '함께 배우는 서대문 인문학교 한국문학사편/ 한국문학사의 라이벌' 온라인 수업에 참여한다. 수업중에 배운 이 시를 가족 단톡에 올렸더니 아빠의 답 "참으로 어려운 것을 즐기시는군요..." 한문을 알고 한문으로 시를 느끼는 것도 아닌데 어렵다니... 아마도 늘 바쁜 일 중에 그런 걸 즐길 시간이 어디 있겠느냐는 푸념으로 들렸다. 어제 아들은, 고문학 시간에 배우는 시는 한자 때문에 어렵다가 결국 '아 술이나 마시자, 취하는구나...' 그러면서 결국은 '임금님 사랑해요!' 라더라고... 그럴 때면 '내가 왜 이 시를 배우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지만, 너무 재밌는 말이라 생각돼 한참 웃었다. 그럼 나는...? 마음이 아프더라. 마음과 세상일이 서로 ..

일상다반사 2020.11.24

숨겨 놓은 보물을 찾으세요,장영희

아침 햇살에 씩씩하게 잘 자라네 달개비 커피를 내리고 우유를 데워 손에 들고 자기소개서를 써봐야지 커피 한 모금에 창밖 하늘을 본 것이 잘못이야 아 물감을 찍기 시작한 것이 잘못이야 책을 펼쳐 든 것이 잘못이야 소리 내 읽다 울컥 울고 말았지 -------- 숨겨 놓은 보물을 찾으세요,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샘터사, 2010 중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는데 미군의 폭격으로 부상당하거나 죽은 이라크 민간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머리가 으깨진 채 숨진 남자, 부모와 양팔을 한꺼번에 잃은 아기, 화상 때문에 괴기한 모습으로 변한 여자, 두 발목이 너덜거리는 소녀, .......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거창한 명분이나..

일상다반사 2020.11.14

꽃가루 속에, 이용악

꽃가루 속에 - 이용악 배추밭 이랑을 노오란 배추꽃 이랑을 숨 가쁘게 마구 웃으며 달리는 것은 어디서 네가 나즉히 부르기 때문에 배추꽃 속에 살며시 흩어놓은 꽃가루 속에 나두야 숨어서 너를 부르고 싶기 때문에 - 오늘 두 시간을 달려 문옥언니를 만나 묵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긴긴 수다를 맛나게 즐기고 언니가 만든 막걸리를 들고 돌아와 책상에 앉으니 문득 이 시가 떠올라 그냥 적었다. 나는 사실 노랗다는 배추꽃을 본 적이 없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김치를 쉽게 담그시는 시어머니를 만나서 시나 소설에서나 읽었던 것들 그저 단어로만 알던 것을 실제로 보고 듣고 맛볼 수 있었다. 그 세계는 시어머니 찬스를 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 문옥언니 덕분에 쓸 수 있었던 오늘의 시어머니 찬스. 무슨 이유인지..

일상다반사 2020.11.09

하면 안 된다, 자크 프레베르 지음, 오생근 옮김

하면 안 된다 지식인들이 성냥을 갖고 놀게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을 혼자 내버려두면 안 되니까 그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전혀 명석하지 못하기 때문이니까 그 사람은 혼자 있자마자 제멋대로 일하기 때문이니까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 : 자크 프레베르 시집, 자크 프레베르 지음, 오생근 옮김 · 해설, 문학판, 2017. ○ 난 혼자 놀고 있는데, 나도 성냥을 갖고 놀고 싶어질까? 그 보다 먼저, 나는 지식인일까? ○ 이미 성냥을 가지고 놀며 불에 홀려 있는 사람들이 이런 노래에 귀 기울일 수 있을까? ○ 그러니까 혼자 놀게 놔두어도 안되고 더더욱 성냥을 갖고 놀게 하면 안되겠지? ○ 팬데믹으로 마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듯한 지금, 전쟁으로 기존의 정신세계가 무너진 후 서양의 지식인들이 새로..

일상다반사 2020.11.04

인간이 우주에 홀로 존재한다면 그에게는 어떤 권리도 없겠지만 그래도 의무는 있을 것이다-시몬 베유

Caricatures : les manifestations contre Emmanuel Macron se multiplient dans (웹 보기) 2020년 10월 29일 (4일전) 프랑스 국기가 불에 타고 엠마누엘 마크롱 대통령의 사진이 발에 밟힙니다.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시오 거리와 몇몇 무슬림 국가에 분노가 들끓고 있습니다. 일부 신자들은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서 출간된 예언자 마호메드의 풍자화를 이해하지 못하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마호메드를 풍자한 그림을 보여줬다고 얼마전 살해 당한 교사를 기리며 풍자의 자유를 열렬히 옹호한 엠마누엘 마크롱의 연설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풍자화의 출간을 반대합니다. 무슬림으로서 우리는 슬픕니다. 켤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

일상다반사 2020.11.02

영원할 수는 없으니

추석과 일주일 간격으로 시아버지의 기일이다. 올해는 코로나 방역에 협조하는 뜻에서 추석 차례에는 모이지 않고 시아버지 기일에 자녀들만 모이는 것으로 하여 준비하기로 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 아버지 기일은 8월 22일. 우리 엄마 빼고 기억들은 해 주려는지 모르지만 내 생일은 음력 9월 1일. 나는 생일을 약력으로 지낸다. 예상대로 2년전엔 내 생일에 아버지 제사상을 차리고 있었고 올해는 추석 바로 전날이니 하마터면 생일에 차례상을 차리고 있을 뻔했다. 이덕무가 쓴 에 나오듯이 제사를 준비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차리느냐보다 돌아가신 분을 그리는 슬픈 마음이다. 시아버지는 음식을 그리 잘 드시는 분이 아니셨다. 음식을 차리는 사람 마음은 그렇다.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 그러니 아무리..

일상다반사 2020.09.23

'며느리 사표'란 말에 쫄아서

이진아도서관에서 마련한 양성평등주간 기념행사 온라인 저자강연회. 김영주 선생님의 주제에 선명하게 보이는 말 '며느리사표'. 화요일 예정이던 강의가 강연자 사고로 일요일 2시로 급히 옮겨졌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주부로서 그 말은 즉, 강의를 들으려면 월차를 내던지 연가를 내던지 아님 사표를 내라 아니면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들어라 그런 소리로 들렸다. 그래 온라인 강의니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며 듣든 무슨 상관이람. 휴일이라 아침도 늦어지고 그래서 점심도 늦어지고, 어머니는 참고 참으시다 토요일 시장을 다녀오시며 손주놈 해주라고 떡볶이 재료를 사오셨다. 결국 강의는 남편과 함께 장을 보러 가던 차안에서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82년생 김지영 이야기도 나왔고, 어느 커리어 우먼의 첫 시댁생활과 ..

일상다반사 2020.09.07

신박한 정리는 아니라도

매주 월요일 Tvn에서 방영하는 를 본다. 정리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늦은 시간에 왜 혼자 멀뚱멀뚱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연예인이 나오긴 하는데 그렇게 인기 있는 연예인인가 싶다. 심드렁하게 보고 있으면, '신박'하게 정리된 자신의 집을 보고 출연자가 자기도 모르게 울컥하는데 그 부분이 정말 드라마틱하다. 진행이 그렇게 매끄러운 것도 아닌데 이들의 눈물은 말 그대로 '리얼'하다. 어제도 봤다. 열심히 살지만 하루를 견뎌내기 급박하다고 했다.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고, 그러다 편하게 소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 그 모습이 나를 닮았다. '버려라' '비워라' 읽고 쓰지만 그럴 시간마저도 없는 내 모습. 신박하게 정리해 주는 전문가도 대단하지만 별 볼 일 없게만 보이던 의뢰인 출연자들이 ..

일상다반사 2020.09.01